(창원=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NC 투수 이태양·넥센 외야수 문우람(상무)이 프로야구 승부조작에 가담하게 된 배경에는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가 있었다.
승부조작 사건이 터질 때마다 관계자들은 사과 성명을 발표하면서 재발 방지를 위해 예방 교육, 징계 강화 등을 약속했지만 공염불에 그쳤다는 전문가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승부조작의 근본 원인인 도박 사이트가 활개 치는 한 이와 같은 사건은 더욱 치밀해진 수법으로 음지로 숨어들어 번창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KBO 리그가 승부조작 파문으로 위상과 인기가 급락한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나 대만 프로야구의 전철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 야구·배구부터 농구까지…승부조작 뒤에 불법 사이트
이번 사건을 수사한 창원지검 특수부에 따르면 이태양은 지난해 5월 29일자 경기에서 '1이닝 1실점'을 해주는 대가로 브로커로부터 2천만원을 받았다.
이 브로커는 도박 사이트 베팅방 운영자에게 이 사실을 전달, 차명ID 수십개를 만들어 '1회 실점'에 1억원을 걸어 배당금 1억원을 챙겼다.
이들이 승부조작에 가담한 방법은 4년 전 프로야구를 덮친 승부조작 파문 당시 수법과 같다.
2012년 LG 트윈스 투수 김성현과 박현준은 돈을 받고 경기 내용을 조작했다.
이들은 브로커로부터 수천만원을 받고 수차례에 걸쳐 1회 첫 타자에게 볼넷을 내줬다.
이밖에 2012년 프로배구 전·현직 선수 16명의 승부조작이나 2011년 전·현직 프로축구 선수 58명이 연루된 승부조작 사건 당시에도 그 배후에는 불법 도박 사이트가 꽈리를 틀고 있었다.
선수나 감독이 불법 도박에 직접 베팅해 구설에 오른 사례도 있다.
2013년에는 당시 프로농구 원주 동부 감독이던 강동희가 브로커로부터 돈을 받고 4경기를 연달아 지는 방식으로 승부를 조작했다.
전창진 전 KGC인삼공사 감독은 2015년 5월 불법 도박 사이트 베팅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으며 같은 팀이었던 오세근 등 프로농구 선수 11명도 같은 혐의로 입건됐다.
◇ 한해 불법 스포츠도박 규모 21조원
이처럼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 프로선수들이 계속 불법 도박에 연루되는 이유는 인터넷 불법 도박의 규모가 그만큼 거대하기 때문이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우리 일상에서 인터넷과 스마트폰 비중이 커지면서 불법 스포츠도박 규모는 2015년 21조8천억원에 달했다.
전체 불법 도박 규모인 83조7천억원에서 약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스포츠도박은 그 비중이 크다.
경찰에 따르면 2015년 접수한 전체 사이버 도박 관련 범죄는 총 3천365건이다.
전문가들은 207만명 정도가 불법 사이버 도박 범죄에 노출되어 있다고 추정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추정치이기 때문에 미성년자를 포함할 시 이 수치는 높아질 수 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스포츠도박에 빠져있는 이유는 합법인 스포츠토토와 달리 베팅액 제한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서 고액의 베팅이 가능해 '한탕주의' 심리를 부추기고 가입 등도 간소해 접근성이 좋다는 데 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유승훈 경남센터장은 "스포츠도박이 대부분 스마트폰을 통한 온라인 공간에서 이뤄져 시공간 제약이 없다"며 "또 계좌와 전화번호만 있으면 따로 인증절차를 밟을 필요 없이 가입 가능해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 센터장은 이어 "단순 승패에만 베팅하는 스포츠토토와 달리 불법 스포츠도박은 특정 타자의 안타, 1회 볼넷·실점 등 베팅내역을 세분화해 이용자들이 더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며 "고액 베팅도 가능하니 짧은 시간에 큰돈을 만지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서강대학교 교육학과 정윤철 교수는 "불법 도박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며 "잘만 하면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그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해 사실은 운영자 등만 돈을 챙기는 착취구조"라고 설명했다.
◇ 드러난 것 '빙산의 일각'…근절책 막막
현재 드러난 브로커-선수 연계 승부조작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는 계정을 해외에 두고 회원제로 폐쇄적 운영을 하면서 주소도 자주 바꿔 경찰 단속만으로는 근절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처벌보다 적극적 예방 정책이 더 효과가 있다는 입장이다. 스포츠토토를 활용해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합법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윤철 교수는 "유소년 축구 등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지는 스포츠 종목에 브로커가 개입한 승부조작 사례가 만연하다는 현장 목소리가 크다"며 "스포츠토토의 베팅내역을 지금보다 다양하게 하는 등의 조치로 음성적 이용자들을 양지로 끌어내 관리하는 게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고 말했다.
유승훈 센터장은 "사행성을 조장하는 사이트를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런 사이트의 단속이나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람들이 애초 이런 곳을 이용하지 않도록 홍보·교육활동을 하는 등 예방적 측면을 강화하는 게 더 절실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