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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를 통해 희망 찾는 다문화 가족 6. 프로기사 권효진·위에량 부부 & 딸 악지우 이야기
2018-12-13

케이토토가 스포츠동아와 함께 다문화가족 출신으로 스포츠를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해 나가는 선수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여러 체육인들을 소개하는 기획기사를 연재합니다. 다문화 가족 어린이와 청소년, 부모들의 꿈과 용기를 응원하는 이번 연재 기사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스포츠를 통해 희망 찾는 다문화 가족⑥]

프로기사 권효진·위에량 부부 & 딸 악지우 이야기

 

 

 

한중합작 최초의 국내 모녀기사 탄생을 꿈꾸는 바둑가족. 아빠 위에량 6단, 딸 악지우, 엄마 권효진 6단(왼쪽부터)이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바둑판을 놓고 모여 앉았다. 딸의 힘찬 착수가 악권 패밀리의 밝은 미래를 예고하는 것만 같다. 사진제공|한국기원

 

 

“이제 그만 중국으로 돌아가야겠어.”

“따라갈래.”

“그래. 우리 같이 가자.”

중국의 프로바둑기사 위에량(36)은 아내 권효진(36)과 결혼하기로 결심을 굳힌 순간을 떠올렸다. 세계 여자바둑계를 평정했던 ‘철녀’ 루이나이웨이 9단의 남편 장주주 9단의 소개로 한국에 들어와 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던 위에량이었다.

“내가 중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니까 따라오겠다고 하더라. 따라오면 결국 내가 책임질 수밖에 없으니까.(웃음)”

두 사람은 2005년 웨딩마치를 올렸다. 한중 프로기사끼리의 첫 결혼사례였기에 당시 언론에서 큰 화제가 됐다.

권효진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최전성기를 구가한 한국바둑에 기름진 자양분을 공급하던 국내 바둑도장의 맹주 권갑용 8단의 딸이다. 당시 권갑용도장과 허장회도장은 강남과 강북을 나눠 가지며 숱한 천재들을 길러냈다. 알파고와 세기의 반상전쟁을 벌였던 이세돌 9단이 권갑용의 직통제자다.

권효진과 위에량은 이성이 아니라 승부사로 처음 만났다. 2003년 1월에 열린 한중친선교류전에서 바둑판을 마주하고 앉아 1승1패씩을 기록했다.

“(권효진)남편은 여자기사에게 처음으로 져서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에요. 바둑이 끝나고 복기를 할 때 제가 중국어로 말하니 ‘2차 충격’이 오면서 저한테 호감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한 달 뒤, 권효진은 다시 중국을 찾았다. 제1회 정관장배 세계여자바둑선수권전 준결승전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로 이어지는, 이른바 4인방 보유국인 한국은 세계바둑최강국으로 군림하고 있었지만 역사가 짧은 여자바둑은 중국이 한국보다 한 수 위였다.

권효진은 중국의 간판스타 장쉔을 만나 선전했지만 1-2로 패했다. 세계대회 결승진출의 기회를 놓쳐 상심이 컸던 권효진을 위로한 것은 위에량이었다.

● 아빠도 못 말린 고집 센 딸의 중국행

위에량이 지도사범으로 일하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두 사람의 연애전선에는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 이들의 사랑이 결혼으로 결실을 맺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금지옥엽 딸이 중국의 프로기사와 결혼하겠다는데 혹여 아버지 권갑용의 반대가 있지는 않았을까.

“아뇨. 제가 고집이 세서 이기지 못할 싸움을 아예 시작하지도 않으셨던 것 같아요.(웃음) 반대하셨다면 식은 못 올렸겠지만 그래도 남편을 따라 중국으로 갔겠죠.”

아버지가 딸 몰래 예비사위에 대한 ‘뒷조사’를 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평소 친분이 있던 중국의 어느 한국통 기자가 뒷조사를 맡았는데, 결과는 ‘헌 하오(매우 좋다)’. 장인어른의 허락이 떨어졌다!

두 사람은 벌써 몇 년째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남편 위에량은 중국에서 프렌차이즈 바둑교실을 운영 중이다. 바둑교실의 명칭은 ‘악권국제바둑도장’. 부부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 ‘악권’이라 지었다. 남편의 성인 ‘위에’를 한자로 쓰면 ‘악(岳)’이다. 지점이 전국에 13곳이나 된다.

“(권효진)남편은 아무리 바빠도 한두 달에 한 번은 꼭 한국으로 돌아온답니다. 아이들을 어찌나 보고 싶어 하는지 몰라요. 정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부부 사이에는 두 명의 자녀가 있다. 큰 아이가 아들 악현(13·동작초5), 둘째가 딸 악지우(11·동작초3)다. 이 중에서 동생 지우가 ‘가업’을 이어받아 바둑을 공부하고 있다. 아빠, 엄마처럼 프로기사가 되는 게 목표다.

“(권효진)원래 현이가 바둑을 배웠는데 싫증을 느껴서 그만뒀어요. 지우는 전혀 계획에 없었는데, 6개월 동안 떼를 쓰는 거예요. 외할아버지(권갑용)가 지우 상태를 보시더니 한번 시켜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엄마의 기재를 이어받았는지 지우의 바둑실력은 입문하자마자 하루가 다르게 쑥쑥 늘었다. “질 때는 속상하지만 이길 땐 짜릿한 바둑이 너무 좋다”고 한댄다. 말리던 엄마도 딸의 선택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고집이 셌던 딸은, 이렇게 엄마가 되어 고집 센 딸에게 진다.

● 최초의 부녀기사에 이어 모녀기사도 탄생할까

이제 엄마의 꿈은 딸이 ‘롱런할 수 있는 프로기사’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이다. 어려서 바둑계가 떠들썩할 정도로 천재성을 발휘했던 엄마의 눈에 딸의 기재는 차지 않지만, “뚝심이 강해 잠재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바둑은 프로기사 한종진이 운영하는 도장에서 배우게 했다. 아빠는 중국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 교육비를 책임지고 엄마는 지우의 도장픽업, 도시락 담당이다. 권효진은 “자기 자식 가르치기 힘들어요” 하며 웃는다.

지우도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프로기사가 되고 싶은 이유에 대해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바둑”이라고 다부지게 말했다. 가끔 부모와 바둑을 둘 때는 엄마가 더 좋단다.

“엄마가 두기 편하거든요. 아빠는 접바둑이 너무 세서 별로예요.”

권효진이 입단해 프로의 관문을 뚫은 것은 1995년. 아버지 권갑용에 이어 권효진이 입단하면서 한국바둑계에는 최초의 부녀프로기사가 탄생했다.

20여 년이 흘러 이제 그 딸은 자신의 딸을 프로기사로 키우고 있다. 권효진-악지우. 국내 첫 모녀프로기사 역시 권효진에 의해 탄생할 수 있을까.

이 가족의 인생포석이 참 큼직하면서도 아름답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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